일본 외환당국의 잇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슈퍼엔저’ 현상이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한국 원화만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찾은 대조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와 통화당국이 엔화 약세에 대한 구두 개입성 경고를 여러 차례 내놓았음에도 시장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한국 재정경제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한일 양국이 수시로 연락하고 있다”며 달러 강세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고려로 금리 인상 못한다”
엔저가 장기화되는 배경에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딜레마가 자리한다. 고노 류타로 BNP파리바 일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선제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진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인 통화정책 논리로는 엔저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국내 정치 지형과 경기 부양 필요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일본은행의 정책 운신 폭이 좁아졌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일본 당국의 구두 개입만으로는 엔저 추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일본이 부러워하는 ‘한국 증시’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웃 나라 일본에서 최근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일본 시사주간지 분슌(문예춘추) 온라인판은 최근 한국 경제지 간부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 젊은 세대의 생존 전략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치솟는 집값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주식뿐”이라는 표현을 통해,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이 요원해진 한국 청년들이 주식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는 세태를 전했다. 최근 한국 증시가 강세를 보이는 배경으로는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정치적 안정과 반도체 경기 회복이 함께 꼽혔다. 부동산 시장의 어려움이 역설적으로 증시 활황의 한 원인으로 해석되는 대목이어서, 일본 언론의 시선에서도 이런 한국 사회의 독특한 단면이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 된 셈이다.

엔저 특수 누리는 인바운드 관광
엔저가 일본 경제 전체에 부담만 주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엔화 가치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일본 방문과 쇼핑 소비는 오히려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저를 활용한 이른바 ‘엔테크(엔화 재테크)’ 수요와 함께, 해외 관광객들의 일본 내 소비가 늘면서 관광업과 소매업 일부는 오히려 엔저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런 관광 특수가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엔저의 부작용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원화만 홀로 안정, 이유는
같은 기간 한국 원화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는 앞서 다뤄진 것처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과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에 따른 외화 유입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이면서도 통화정책 여력과 산업 경쟁력의 차이가 환율 흐름을 갈라놓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슈퍼엔저가 언제쯤 진정될지, 그리고 한국 원화의 상대적 강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앞으로 두 나라 중앙은행의 정책 행보이 변수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