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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무덤을 팠어요” 190만 필리핀 외주 산업을 흔드는 AI

글로벌 글로벌·2026년 08월 06일

“제 무덤을 판 것 같아요.” AI 학습용 데이터를 다듬는 일을 하던 한 필리핀 노동자의 말이에요. 자기가 가르친 시스템이 자기 일자리를 가져갔으니까요. 지금 필리핀에서는 이 문장이 개인의 소회를 넘어 국가 경제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190만 명이 걸린 산업이에요

규모부터 짚어볼게요. 필리핀의 업무처리 아웃소싱, 흔히 BPO라고 부르는 산업에는 약 190만 명이 종사합니다. 연간 매출은 4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4조 7000억 원이에요. 필리핀 전체 경제 생산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핵심 먹거리입니다.

동남아 대도시의 저녁 스카이라인

이 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약 15년 전 필리핀은 인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콜센터 고용국이 됐습니다. 영어를 쓰고, 미국식 억양에 익숙하고, 인건비는 낮다는 조합 덕분이었죠. 미국 기업의 고객 응대 전화를 마닐라의 사무실이 받는 구조가 20년 넘게 이어졌어요.

무너지는 방식이 좀 잔인해요

생성형 AI가 이 구조를 흔들고 있습니다. 단순 문의 응대, 결제 확인, 예약 변경처럼 정해진 절차를 밟는 업무는 이제 AI가 더 싸고 빠르게 처리하거든요.

책상에 놓인 헤드셋

여기서 앞서 나온 “제 무덤을 팠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 있어요. AI 모델을 훈련시키려면 사람이 데이터를 분류하고 답변 품질을 평가해야 합니다. 그 작업 상당량이 필리핀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으로 맡겨졌어요. 콜센터 일이 줄어들자 많은 노동자가 이 데이터 라벨링 쪽으로 옮겨갔고요.

그런데 그렇게 훈련된 AI가 다시 콜센터 업무를 대체합니다. 자기 손으로 후임자를 길러낸 셈이 되는 거죠.

기업들의 설명은 조금 다릅니다

업계 쪽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는 생성형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보다는 거의 모든 직무를 재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AI 역량 강화와 인력 교육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어요.

필리핀 최대 아웃소싱 기업인 콘센트릭스도 비슷한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하는 일이 바뀐다는 거죠.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 앞에 선 사람

흥미롭게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계도 있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 콜센터 고용은 오히려 늘었고, 인도 실업률은 7% 안팎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됐거든요. AI가 아웃소싱 노동자를 곧바로 대체하지는 않았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됐던 수치입니다.

다만 최근 흐름은 그 낙관과 어긋나고 있어요. 단순 응대를 넘어 재무 같은 백오피스 업무까지 자동화가 번지면서, 필리핀과 인도 양쪽에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는 중입니다.

필리핀이 꺼낸 카드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필리핀은 AI와 자동화를 결합한 이른바 ‘스마트 BPO’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AI에게 단순 업무를 맡기고 사람은 더 복잡한 판단을 담당하는 구조로 가겠다는 거죠.

동시에 지식집약 아웃소싱, 줄여서 KPO 영역으로 확장도 꾀하고 있어요. 법률, 의료, 금융처럼 전문 지식이 필요한 데이터 분석과 컨설팅 쪽입니다. 여기에 AI 데이터 관련 사업도 새 축으로 키우려 하고 있고요.

남는 질문

계획은 그럴듯한데, 현실적인 장벽이 있어요. 콜센터에서 10년 일한 사람이 법률 데이터 분석가로 옮겨가려면 상당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190만 명 규모를 그렇게 전환시키는 건 몇 년짜리 국가 과제예요.

그리고 이건 필리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세기 말 아웃소싱은 선진국의 일자리를 개발도상국으로 옮겼어요. 인도의 콜센터, 필리핀의 회계 업무처럼요. 그때 만들어진 지도가 지금 AI에 의해 다시 그려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 옮겨가는 곳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데이터센터라는 게 결정적 차이예요. 일자리가 국경을 넘는 게 아니라 아예 사람 손을 떠나고 있으니까요. 필리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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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지구촌 뉴스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국제 정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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