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지난 7월 1일부터 철강 수입 쿼터를 대폭 축소하며 전 세계 철강 수출국들이 비상에 걸린 가운데, 한국은 정상외교 일정까지 협상 카드로 동원하는 배수진 전략으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무관세 쿼터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등 다른 수출국들이 쿼터 삭감의 직격탄을 맞은 것과 대조적인 결과여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EU, 전체 철강 무관세 쿼터 39만→18.3만톤 급감
EU는 지난 1일부로 전 세계 철강 수입에 적용되는 연간 무관세 쿼터 상한을 3900만 톤에서 1830만 톤으로 큰 폭으로 낮췄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부터 역내 철강업체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대러 전쟁 속에서도 지난해 대비 25%나 수출 물량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무관세 쿼터가 전년 대비 60% 삭감된 연간 105만 톤에 그치는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관련 세금과 복잡한 원산지 규정,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한 50%의 징벌적 관세까지 겹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최대 12억 달러에 이르는 잠재적 매출 손실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 “정상 방문 취소” 배수진으로 선방
이런 살얼음판 협상 국면에서 한국 통상당국은 정상외교 일정까지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배수진 전략을 구사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에 우호적인 무관세 쿼터가 유지되지 않으면 예정된 EU 방문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초강경 입장을 내비치며 막판 담판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한국은 상대적으로 선방한 쿼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첫 아시아 국가라는 지위와 함께, 중국·일본 등과 달리 한국산 철강이 EU에서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쿼터, 통관 대란까지 촉발…”모호함 대신 혼란”
그러나 새로운 EU 철강 쿼터 제도 자체는 시행 초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통관 지연과 시장 혼란을 촉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철강 전문매체는 “새 쿼터 제도가 모호함을 없애기는커녕 대규모 통관 적체와 시장 혼란을 낳았다”며 “시행 첫날부터 항구 곳곳에서 충격적인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출업체들은 새로운 코드 체계와 규정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전 세계 철강 생산국들의 반응도 제각각 엇갈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철강업계, 일단 한숨 돌려…긴장은 여전
이번 협상 결과로 국내 철강업계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U의 보호무역 기조가 근본적으로 강화된 만큼, 향후 쿼터 재조정이나 추가 규제 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엔 정상외교까지 동원한 총력전으로 방어에 성공했지만,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매번 이런 방식의 대응이 통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중장기적인 통상 전략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