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일부터 유럽에서 고위험 AI를 쓰려면 의무 인증부터 받아야 한다” —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알려져 있었는데요, 최근 들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EU 이사회가 지난 6월 29일 ‘AI 법 간소화 패키지’에 최종 승인을 내리면서, 애초 8월 2일로 예정됐던 고위험 AI 시스템 의무 준수 기한이 대폭 뒤로 밀렸거든요. 유럽에 AI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국내 기업이라면 지금 당장 일정표를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밀린 걸까?
핵심만 짚어볼게요. 채용·신용평가·에너지망 관리 같은 곳에 쓰이는 ‘사용 기반’ 고위험 시스템(부속서 III)의 의무 준수 기한은 원래 2026년 8월 2일이었는데, 이게 2027년 12월 2일로 16개월 늦춰졌어요. 의료기기나 승강기처럼 다른 제품 안에 내장되는 ‘제품 규제형’ 고위험 시스템(부속서 I)은 원래 2027년 8월이었던 기한이 2028년 8월 2일로 1년 더 미뤄졌습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16일 이 개정안을 최종 승인했고, 이사회도 통과시켰으니 이제 남은 건 관보 게재뿐이에요. 다만 이 절차가 8월 2일 이전에 끝나야 법적 효력이 완전히 확정되는 구조라, 아직 ‘진행형’이라는 점은 알아두셔야 해요.
EU 이사회는 이번 합의를 발표하면서 “규정을 단순화하고 간소화한다(simplify and streamline)”는 표현을 공식 명칭에 그대로 넣었어요. 처음 AI법을 설계할 때보다 컴플라이언스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업계 불만을 어느 정도 반영한 셈인데요, 브뤼셀 안팎에서는 “미국·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번 완화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럼 8월 2일엔 아무 일도 없는 걸까?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어요. 고위험 의무만 미뤄진 거지, AI법 전체가 멈춘 게 아니거든요. 제50조에 담긴 투명성 의무는 예정대로 8월 2일부터 그대로 적용됩니다. 챗봇을 쓰는 서비스는 이용자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건 AI입니다”라고 알려야 하고, 딥페이크 영상이나 AI가 만든 이미지·음성은 인위적으로 생성됐다는 표시를 반드시 넣어야 해요. 감정인식이나 생체정보 분류 시스템을 쓰는 곳도 노출된 사람에게 사전 고지할 의무가 그대로 남습니다. 이 조항을 어기면 최대 1,5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매출의 3% 중 더 큰 금액이 과징금으로 부과될 수 있어요 — 결코 가벼운 액수가 아니죠.
흥미로운 지점은 워터마킹(AI 생성 콘텐츠 식별 표시) 의무의 기존 시스템 적용 시점만 오히려 3개월 앞당겨져 2026년 12월 2일로 확정됐다는 거예요. 다른 의무는 다 뒤로 밀렸는데 이것만 당겨진 셈이니, 실무자 입장에서는 헷갈릴 수밖에 없어요. 범용 AI(GPAI) 모델에 대한 의무는 이미 지난해 8월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했고요, 올해 8월 2일부터는 EU 집행위원회가 정보 요청, 모델 접근, 리콜 명령 같은 실제 집행 수단을 가동하기 시작합니다.


새로 생긴 금지 조항도 있어요
이번 개정안이 규제를 풀어주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실존 인물의 얼굴을 합성한 비동의 성적 이미지나 아동성착취물(CSAM)을 생성하는 행위는 올해 12월부터 명시적으로 금지됩니다. 옷을 지운 것처럼 편집하거나 신체 부위를 노출시키는 방식의 이미지 조작도 마찬가지고요. 완화와 강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인데, “기업 부담은 줄이되 개인 피해가 큰 영역은 오히려 더 촘촘하게 막겠다”는 게 이번 개정의 방향인 것 같아요.
유럽 시장을 상대하는 국내 기업이라면 지금 뭘 해야 할까요. 우선 자사 AI 시스템이 부속서 III(사용 기반)와 부속서 I(제품 내장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부터 분류하는 게 먼저예요. 고위험으로 분류된다면 인증·리스크관리 체계를 갖출 시간을 1년 넘게 벌었으니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졌지만, 챗봇이나 생성형 이미지·영상 서비스를 운영 중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제50조 투명성 의무는 유예 대상이 아니라서 8월 2일까지 라벨링·고지 체계를 반드시 갖춰놔야 하거든요. 특히 기존에 이미 배포된 AI 생성 콘텐츠 워터마킹은 12월 2일까지 시한이 오히려 당겨졌다는 점, 잊지 마세요.
결국 이번 개정을 한 줄로 요약하면 “고위험 시스템엔 숨 돌릴 시간을, 투명성엔 여전히 마감 시계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보 게재라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8월 2일 직전까지 세부 시행 내용이 조정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